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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여 이야기 - 2019년 정림사지박물관 특별전 (2019. 7. 2 - 9. 22), 기획전시실(박물관 2층)

by 사비사랑 posted Jul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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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9. 7. 2 - 2019. 9. 22
장소 기획전시실

정림사지박물관은 2019년도 특별전

<조선시대 부여 이야기>를 열며

 

서기 538년 백제(百濟)가 도읍한 이래로 부여는 한반도 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고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660년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부여는 오랫동안 잊혀진 도읍(都邑)이 되었습니다.

고려가 건국되고 100여년이 지난 태평(太平) 연간의 무진년(戊辰年)(1028), 백제 고토(故土)에 홀로 우뚝 솟아 있던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정림사(定林寺)가 중창되면서 부여는 새로운 영광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서 고도(古都)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토대로 사람살기 좋은 터전으로 거듭났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왕실의 태(胎)를 모시는 중요한 명당(明堂)이 되었고, 북벌(北伐)을 통해 나라의 강성을 꿈꾸었던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선생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습니다. 또한 백제인의 위대한 걸작인 정림사지오층석탑 등 백제의 불교문화과 고려를거쳐 고스란히 전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상업경제의 발달과 함께 백마강(白馬江)과 그 주변에 지천(支川)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에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돌다리가 건립되어 사람들의 삶은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이처럼 백마강을 젖줄 삼은 부여는 실로 천혜(天惠)의 명당(明堂)으로 충절(忠節)의 고향(故鄕)이었으며 진리(眞理)의 땅이자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고장으로 모든 사람들, 만인(萬人)이 덕(德)을 누리는 이름난 고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명향(名鄕)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부여(扶餘)의 생생한 문화를 묵향(墨香)으로 느껴보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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